전현태 기자
국가유산청은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의 청나라 연행 기록인 「박지원 열하일기 초고본 일괄」을 비롯해 「가평 현등사 아미타여래설법도」,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양산 신흥사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 등 총 4건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박지원 열하일기 초고본 일괄」 (연행음청 건·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박지원 열하일기 초고본 일괄」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자료로, 박지원(1737~1805)이 청나라 북경과 열하를 다녀온 뒤 집필한 『열하일기』가 최초로 제작될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이 자료는 박지원이 귀국 직후 작성한 가장 초기 단계의 고본(稿本)에 해당하며, 현재 국내외에 전하는 다양한 전사본 『열하일기』의 저본으로 활용된 것으로 평가된다.
해당 박물관에는 총 10종 20책의 열하일기 초고본 자료가 소장돼 있으나, 모두가 박지원의 친필 고본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 자료에는 박지원의 후손과 문인들에 의해 첨삭·보완된 흔적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보물로 지정 예고된 것은 박지원의 친필 고본 성격이 분명한 4종 8책으로, 정본에 없는 서학 관련 용어와 새로운 내용을 담은 「연행음청」 건·곤 2책, 가장 초기 고본의 형태를 보여주는 「연행음청록」과 「연행음청기」 1책, 서문과 단락 구성을 갖춘 「열하일기」 원·형·이·정 4책, 정본에 수록되지 않은 내용이 다수 포함된 「열하피서록」 1책이다.
국가유산청은 이 자료들이 『열하일기』의 형성 과정과 수정·개작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조선 후기 실학사와 당대 사회에 끼친 사상적 영향을 살필 수 있는 점에서 보물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함께 지정 예고된 「가평 현등사 아미타여래설법도」는 화기를 통해 1759년(영조 35년) 제작 연대와 수화승 오관을 비롯한 제작자, 봉안 사찰이 명확히 확인되는 조선 후기 불화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아미타여래가 극락세계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나한, 팔금강, 팔부중 등 40여 존상을 위계에 따라 안정적으로 배치했으며, 섬세한 문양 표현과 힘 있는 필선에서 당시 경기 지역을 대표하는 화승의 높은 역량을 엿볼 수 있다. 현존하는 18세기 경기 지역 불화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경기 지역 아미타설법도 가운데 가장 이른 제작 사례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명문 등 제작 연대를 알려주는 자료는 없으나, 불상의 조형 양식과 대좌 형식, 인근 석등과의 비교를 통해 통일신라 하대인 9세기 후반 제작으로 추정된다. 광배는 소실되고 일부 손상이 있으나, 불신과 대좌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균형 잡힌 비례와 정교한 조각 수법을 갖추고 있어, 기존에 보물로 지정된 9세기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라 지역에서 드물게 확인되는 9세기 석조비로자나불좌상으로, 통일신라 후기 불교미술의 지방적 확산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꼽힌다.
「양산 신흥사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은 수조각승 승호를 중심으로 여러 조각승이 참여해 1682년(숙종 8년) 제작한 작품이다. 우협시 보살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을 통해 영산회 삼존불로 조성되었음이 확인되며, 17세기 이후 대형 불상 제작에 널리 사용된 불석으로 만들어졌다. 승호는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한 대표적 조각승으로, 불석을 활용한 불상 제작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던 인물이다.
이 작품은 경상 지역에서 유행한 불석제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승호가 주전각 봉안을 목적으로 제작한 작품 가운데 가장 이른 사례로 평가된다. 또한 제작 당시 함께 납입된 후령통 등 복장유물은 17세기 후반 불교 복장 의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불상과 함께 지정·보존할 필요성이 크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보물 지정 예고 대상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최종 지정할 계획이다. 아울러 정부혁신과 적극행정의 일환으로,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발굴·재조명해 합리적인 문화유산 지정 제도가 정착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엔미디어=전현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