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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내륙에 없는 풍경, 신두리 해안사구
  • 기사등록 2025-05-24 08: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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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리의 넓고 넓은 사구 위 랜드마크 외딴집/사진=정윤배 작가

맨발로 걷기 좋은 모래길사람과 사람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수많은 말에, 오랑캐가 밀고 내려오듯,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업무와 대인관계의 갈등에 치이다 도망치듯 바다를 찾았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지만 망망대해에 저 혼자 떠 있는 나날의 연속이었고, 스스로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도 모른 체, 밀려가고 밀려오고, 때로는 숨 쉴 틈조차 없이 수면 밑에 있어야만 할 때도 있다. 그러다 혼자 찾은 곳은 어렸을 때 가족들과 처음 여름 여행으로 왔던 바다였다. 아마도 생애 가장 행복했던 때, 그 시절을 찾아 흘러 흘러 닿은 곳이 그 바다였으리라. 

 

홀로 바다를 찾아 해안가 모래사장에 앉아 해가 질 때까지 있었다. 그렇게 망연히 바다를 바라보다 긴장감이 풀렸는지 잠이 들었다, 몸에 스며드는 한기에 소스라쳐 놀라 깬 바다는 김민기의 노래 ‘ 친구.’ 속 그 검은 바다였다.

 고라니 동산에서 본 사구와 펜션단지살다가 문득 이때의 느낌이 떠올라, 그 느낌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려고 할 때. 그때의 내가 지니고 있던 심리적인 상태, 감정을 정리할 수 없었고, 누군가에게 그때 당시의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 구체화할 수 없었다. 그러다 시인 정호승 선생님의 시집 한 권을 선사 받았다. 그 시집에서 ‘바닷가에 대하여’를 읽고 오래전 바다를 홀로 찾았을 때의 내가 그 시 속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시를 읽는 ‘맛’에 대오각성했던 시가 아닐까.

 

바닷가에 대하여 / 정호승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에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게 좋다

  

충청남도 태안해안국립공원의 신두리 해안사구는 그렇게 오롯이 혼자 찾을 때, 나를 깨닫게 해주는 바다이다. 우리나라에 없는 지형인 사막과 같은 풍경, 드넓은 개방감, 넓고 넓은 바닷가에 그림 같은 집 한 채, 아무도 없는 넓고 넓은 해변, 수직의 높고 낮음은 없고 수평선이 존재하는 곳.

 

여럿이서 찾았다면 볼 수 없는 것들을 혼자 찾으면 볼 수 있고 얻게 된다. 마음 맞는 지인들과 사이좋게 찾는다면 아무것도 볼 게 없어 오히려 더 친목에 좋은 곳. 그렇게 신기한 곳이 이곳. 신두리 해안사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철저히 보호되고 있다. 국내에는 여러 곳의 해안사구가 있다. 대청도와 우이도가 그 대표적인 해안사구이고, 그 중 신두리 해안사구가 그 규모 면에서 가장 크다. 사막과 사구는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모래 언덕 아래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어미소와 송아지신두리 해안사구를 가장 드라마틱 하게 보기 위해서라면 날씨가 흐렸다 개었다. 눈이 오고, 바람 불고, 시계가 막혔다 열렸다 하는 날씨에 해발 112미터의 국사봉에 올라 해안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보면 ‘아!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비약을 하자면, 비행기 타고 휭하고 날아가 사막 한가운데 드는 것이 아니라, 길고 긴 카라반을 통해 닿아야 사막의 진면목을 보는 ‘맛’이라고 할까.

 

꼭 그렇지 않아도 신두리 해안사구 관리소 앞에 주차하고 고라니 동산에 올라 신두 사구를 조망하는 것도 볼만하다. 바람 심하게 부는 날이라면 사구의 모래가 날릴 수 있으니, 방풍 기능이 있는 선글라스와 모래바람을 막을 수 있는 머플러나 버프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사구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방책을 따라 구석구석 거닐어 보는데 드는 시간은 2시간여 소요된다. 모래 위를 걷는 길이여서 일반 산책로와 비교해 체력이 더 소모된다. 2시간씩 걸을 수 있는 체력이 아니라면 해안가 오두막집까지는 꼭 다녀와야 신두리 사구를 찾은 보람이 있다. 원경만 바라보다 발아래를 보면 개미귀신이 파 놓은 자그마한 개미지옥도 볼 수 있다. 참고로 개미귀신은 명주잠자리의 유충으로 몸길이 5~8cm로 더듬이는 길고 곤봉 모양이다. 날개는 길고 좁으며, 수많은 날개맥이 있다. 배는 가느다랗고 길다. 여름이면 서해안에서 볼 수 있는 해당화가 사구 이곳저곳에 피고 진다. 

 공룡이 거니는 해변과 양귀비가 한창이다.

드넓은 해변가의 사설 캠핑장신두리 사구 진입로 주변은 어떻게 저렇게까지 해안 풍경을 볼 수 없게 건축 허가를 내줬을까 싶을 정도. 지자체를 원망할 정도로 숙박시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사구의 진면목을 보려면 사구에서 해가 지고 뜨는 것을 봐야 제격이지만, 사구의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한국에서 없는 사막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신선한 경험이 된다. 간혹 신두리 해변의 드넓은 매력에 4륜구동차로 해변을 달리다 바퀴가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해변을 달리고 싶은 욕구는 사구 보호와 자신의 차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참아주시기 바란다.


[여행작가 정윤배 / ochetuz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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