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철 기자
이미지=경찰청 제공
최근 ‘예약부도(노쇼) 사기’의 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 군인이나 교도소 교도관을 사칭하던 사기꾼들은 이제는 연예기획사 관계자,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국회의원 보좌관, 심지어 대선 캠프 인물까지 자처하며 자영업자들을 속이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자영업자들의 ‘을의 위치’를 악용한다. 특히 관공서나 공공기관을 사칭하면 신뢰를 주기 쉬워, 피해자는 대량 주문 요청에 응하면서도 다소 무리한 요구도 거절하기 어렵다. 사기꾼들은 여기에 위조된 공문서나 신분증을 이용해 신뢰를 더욱 조작하고, 피해자를 기망한다.
사기의 구조는 이른바 ‘2단계 속임수’로 이뤄져 있다. 1단계에서는 피해 업자에게 실제 음식이나 물품을 주문한 뒤, 2단계에서는 해당 업자가 취급하지 않는 물품을 다른 업체로부터 대신 구매해달라고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 업자가 돈을 송금하면 곧바로 연락이 끊기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떡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에게 군 간부를 사칭해 대량 떡 주문을 하고, 곧바로 전투식량을 대신 구매해달라며 판매업자를 연결시켜 돈을 송금하게 만든다. 물론 판매업자도 사기단의 일원이며 명함, 사업자등록증 등도 모두 위조다.
경찰은 이 범죄가 국내가 아닌 동남아시아에 있는 콜센터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정당·기관 사칭형 범죄의 경우도 통신 패턴이 기존 예약부도 사기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청은 피싱범죄 수사를 전담하는 강원경찰청 형사기동대를 통해 사건을 집중 수사 중이다.
이러한 사기는 비대면을 기반으로 하며, AI 기술 등을 악용해 모든 것을 진짜처럼 위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대량 주문이 들어오더라도, 반드시 해당 기관이나 업체에 직접 전화를 걸어 진위를 확인해야 한다. 단순히 발신 전화번호로 확인하는 것은 사기에 휘말릴 수 있는 지름길이다.
특히 ‘해당 업체에서 취급하지 않는 물품을 대신 구매해달라’는 요구는 대표적인 노쇼 사기의 전형적 시나리오이므로 단호히 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문 단계부터 의심하고, 반드시 대면 또는 공식 루트를 통한 확인을 습관화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법적으로도 대응이 필요하다. 현재의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특정 유형의 피싱에만 적용되어 예약부도 사기처럼 진화하는 사이버 사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새로운 입법 추진에도 나서고 있으며, 민간·언론·금융기관의 협력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사기 피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다. 영국은 ‘멈추고, 사기인지 생각하라!(Stop! Think Fraud!)’라는 국가 캠페인을 통해 국민 대부분이 사기 유형을 인지하도록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이에 버금가는 범국가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청은 ‘예약부도 사기’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으며, 경제적 취약계층을 노린 비대면 사기인 만큼 전 국민적인 경각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피해 예방을 위해 5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피싱·투자사기·불법대부업 특별 자수·신고 기간’을 운영 중이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경찰의 수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기 시나리오를 인지하고 주변 상인, 가족, 지인에게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예방 활동이 필수적이다. ‘사기는 예방이 최선’이라는 원칙을 기억해야 할 때다.
[경제엔미디어=장민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