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정윤배
봄은 땅에서 솟아 나오고, 가을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지구의 생성 후 만고의 진리. 우리는 해가 바뀌면 새해를 3번 맞는다. 일상으로 사용하는 양력으로의 새해, 달의 변화가 기준인 음력으로의 새해인 설, 농사의 기본이 되는 24절기의 입춘. 여기에 더해 새 학년을 맞이하는 3월도 새해 새로운 다짐을 하는 한해의 커다란 절기이다. 우리는 새해에 새 다짐을 해본다. 사계절의 시작, 새봄을 맞이하면 우리는 새해와 또 다른 기대를 하기도 한다. 꽃이 피어야 봄이고, 새로운 희망을 품으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꽃이다.
남쪽 해안가 마을에서 겨우내 피고 지는 동백과 나무의 두꺼운 껍질을 뚫고 나오는 첫 번째 꽃 매화는 봄의 전령. 봄맞이 여행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원한 주제이기도 하다. 여행을 다녀 본 사람들은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들이 얼마나 봄을 갈구하며 꽃구경을 많이 나서는지 너무도 잘 안다. 유명하다는 매화농원은 전국에서 몰려오는 인파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룬다.
경제엔미디어의 여행기사를 구독하는 여행자라면 이번 봄맞이 여행은 유명관광지에서 살짝 비껴났지만, 꽃구경, 바다 구경, 먹거리 하나 놓치지 않고 알찬 봄 여행 소식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이번의 여행지는 울산 큰애기 인심이 열두 폭 치마에 담겼다고 노래한 그곳 바로 울산이다. 울산은 흔히 공업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여행의 고수들 사이에서는 울산의 바다와 산이 품은 그 진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함부로 소개하지 않는다. 아마도 일반인들의 고정관념 속 울산은 공업도시와 대척을 이루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부산에서 시작한 동해의 해안선이 북진하다 제일 처음 만나는 대도시가 울산. 한때 울산은 계획도시로 외지인이 대부분이고 이른바 뜨내기라고 하는 사람들로 인심이 야박하다고 입소문이 난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지나간 과거. 울산의 인심은 그야말로 큰애기 열두 폭 치마 만큼이나 넉넉함을 되찾았다. 봄맞이하러 가 볼 곳은 울산의 끝, 울기공원.
울기공원 가는 길, 동백이 활짝 피어 오가는 상춘객을 반겨준다/사진=정윤배 작가
1987년 세워진 울기등대, 기존의 등대는 어느덧 119년의 역사가 되었다.
1906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등대를 설치하면서 “울산의 끝"이라는 뜻을 그대로 옮겨 울기(蔚埼)라고 불렀으며, 등대 주변의 해송들이 자라나서 등대불이 보이지 않게 되자 1987년 12월 기존 위치에서 50m가량 이동. 촛대 모양의 아름다운 등대를 새로 건립하고, 기존의 등대는 등대문화유산 제9호 및 등록문화재 제106호로 보존하고 있다. 그 후, 울기(蔚埼)라는 명칭이 일제 잔재라는 의견이 대두되어, 2006년 등대 건립 100주년을 맞아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울기(蔚氣)로 변경되었다.
울산의 대왕암
삼국통일을 이룩했던 신라 30대 문무왕은 생전에 지의 법사에게 말하기를 “ 나는 죽은 후에 호국 대룡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고 한다”라고 하였다. 대왕이 재위 21년 만에 승하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동해구의 대왕석에 장사하여 마침내 동해를 지키게 되었다. 이렇게 장사 지낸 문무왕의 해중릉을 대왕바위라 하였으며 흔히 ‘댕바위’ 문무대왕릉은 경주 영북면에 있다. 대왕이 승하하자 그의 왕비도 세상을 떠난 뒤에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고 했다.
문무왕은 죽어서도 호국의 대룡이 되어, 그의 넋은 쉬지 않고 바다를 지키거늘 왕비 또한 무심할 수 없었다. 왕비의 넋도 한 마리의 호국룡이 되어 하늘을 날아 울산을 향하여 동해의 한 대왕암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사람들은 이곳을 지금의 대왕바위라 불렀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부르기 쉽게 댕바위라 하였다. 용이 잠든다는 이곳 바위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래의 큰 턱뼈를 형상화한 조형물
울산은 포항과 더불어 예로부터 큰 고래가 지나다니는 경로로 알려졌다. 울기등대 주변은 송림이 울창하고 해풍이 사시사철 불어 사계절 울산시민의 안식처가 되어 주는 곳, 오히려 외지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울산시민들에게는 다행일까. 이처럼 좋은 곳을 모르고 지나는 전국의 여행객에게 알리는 것이 심려가 된다. 어찌하랴 비급의 여행지를 전해야 하는 것이 여행작가의 숙명이다.
울기등대 주변에는 해안가 절벽을 잇는 출렁다리와 호국용을 주제로 한 미르놀이터와 그리스 신화를 테마로 한 미로원이 있어 동반한 아이들뿐 아니라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테마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울기공원에서 만난 매화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꽃이 절정을 이루는 매화나무 아래에서도 매향을 맡기가 쉽지 않다. 매화의 꽃 한 송이 한 송이마다의 매화향은 인간의 취각으로 냄새를 맡기에 너무도 미미한 향을 낸다. 매화를 둘러싼 대기가 꽃과 꽃의 향을 모아 어떤 기운에 의해 나에게 와야 그제야 매화향을 맡을 수 있다. 그래서 꽃 중에 가장 고매한 향이 매화향이 아닐까 한다.
울산은 지나다 들리는 곳이 결코 아니다. 반구대 암각화 보러 가는 길의 아늑한 계곡, 태화강 십리대숲, 주전해변 몽돌, 언양읍성과 신불산 온천을 연계하면 가족단위 유명관광지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알찬 여행지로 꾸밀 수 있는 곳이다.
[여행작가 정윤배 / ochetuzi@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