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태 기자
인도 히말라야 라다크(Ladakh) 산맥의 고지대에서 포착된 눈표범(© Sascha Fonseca, WWF-UK)세계자연기금(WWF)이 ‘세계 눈표범의 날(International Day of the Snow Leopard)’을 맞아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으로 위기에 처한 눈표범과 고산 생태계의 현실을 알리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10월 23일은 ‘세계 눈표범의 날’이다. 이 날은 눈표범 보전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2024년 유엔 총회에서 공식 지정됐다.
눈표범은 중앙아시아와 히말라야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서식하는 최상위 포식자로, ‘설산의 유령’이라 불릴 만큼 신비로운 존재다.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고산 지대에 살며 관찰이 쉽지 않아, 여전히 생태 연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WWF에 따르면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이 눈표범의 서식지를 빠르게 위협하고 있다. 히말라야 지역의 평균 기온 상승으로 2070년까지 최대 23%의 서식지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주요 먹이종의 분포 이동과 감소를 초래해 먹이망과 번식지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
눈표범은 고산 생태계의 핵심종이자 생태 건강의 지표종으로 평가된다. WWF 관계자는 “눈표범의 감소는 단순한 종 보전의 문제가 아니라, 고산 생태계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는 신호”라고 밝혔다. 눈표범이 사라질 경우 초식동물 개체 수가 급증해 초원과 산림이 훼손되고, 이로 인해 수많은 생명체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고산의 곡예사, 완벽한 생존자
눈표범은 해발 3000~4500m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 살아가는 완벽한 생존자다. 두꺼운 털과 길이 1m의 꼬리는 체온 유지와 균형 잡기에 필수적이다. 강력한 뒷다리는 몸 길이의 여섯 배인 9m까지 도약할 수 있도록 하며, 발바닥의 두꺼운 털은 눈 위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게 돕는다.
이러한 신체 구조 덕분에 눈표범은 절벽과 협곡을 자유롭게 오가며 사냥한다. 회색빛 털과 옅은 반점 무늬는 설산의 바위와 눈에 완벽히 위장되어 ‘고산의 곡예사’이자 ‘설산의 유령’으로 불린다.
인간의 그림자 아래 사라지는 산의 왕
한때 중앙아시아 전역을 누비던 눈표범의 서식지는 현재 12개국 일부 고산 지역으로 축소됐다. 전 세계 개체 수는 약 4000~6500마리로 추정되며,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눈표범을 멸종위기 ‘취약(Vulnerable)’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WWF 조사에 따르면 매년 약 220~450마리의 눈표범이 인간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이 중 상당수는 불법 사냥과 보복성 살해에 의한 것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전체 사망 원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눈표범의 털과 뼈, 신체 부위는 여전히 불법 거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먹이 부족으로 가축을 사냥한 개체가 지역 주민에 의해 살해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또한, 광산 개발, 수력발전소 건설, 관광 인프라 확충 등으로 서식지가 단절되고 있다. 인간의 활동 반경이 산악 지대 깊숙이 확장되면서 눈표범의 이동 경로가 차단되고, 푸른양·아이벡스 등 주요 먹이종의 개체 수가 감소하면서 먹이 부족이 심화되고 있다.
WWF “사람과 눈표범이 공존하는 길 찾아야”
WWF는 눈표범 보전을 위해 지역사회, 정부, 과학자들과 협력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부 히말라야 지역에서는 지역 주민이 직접 눈표범을 모니터링하고, 가축 피해를 줄이기 위한 포식자 방지 울타리 설치, 지역 보험 제도 운영, 대체 생계 지원 등을 통해 보복성 살처분을 줄이고 있다.
아울러 WWF는 각국 정부와 함께 불법 밀렵 단속을 강화하고, ‘온라인 야생동물 밀매 종식 연합(Coalition to End Wildlife Trafficking Online)’을 운영하며 불법 거래 근절에도 힘쓰고 있다.
과학 기반의 보전 활동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WWF는 인도, 몽골, 부탄 등에서 눈표범 개체 수 조사를 지원했으며, 부탄의 경우 2016년 대비 2023년 개체 수가 39.5%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GPS 위성 추적을 통한 이동 경로 분석과 환경 DNA(eDNA) 기술을 활용한 서식지 조사 등 첨단 과학 기법을 통해 보다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보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WWF 관계자는 “눈표범을 지키는 일은 단지 한 종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지구의 가장 취약한 생태계를 지키는 일”이라며,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경제엔미디어=전현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