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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한옥기행, 보성 강골마을 열화정
  • 기사등록 2025-03-1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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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정 뜨락에는 송이채 떨어진 동백꽃이 수놓아져 있다/사진=여행작가 정윤배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경전선 득량역에서 느린 걸음으로 두어 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는 전통마을. 마을의 뒤편 대숲과 동백에 가려진 정자 열화정에서는 시인묵객들이 거취하기도 했고, 당대의 현안에 대해 숙고를 하기도 했던 곳. 영화 " 혈의 누" 촬영지이기도 한곳으로 강골마을 방문 시 빼놓지 말고 들려야 할 곳. 열화정은 1845년(헌종 11) 이진만이 후진 양성을 위해 지은 정자다. 1845년 쓴 ‘열화정기(悅話亭記)’에는 도연명이 쓴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오는 “친척과 정이 오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하다(열친척지정화, 悅親戚之情話)”라는 글을 따서 열화정(悅話亭)이라 이름 붙였다 적고 있다

 이진래 고택의 솟을 대문

봄은 남해안의 해풍에 실려 남도 땅에 도착했다. 해마다 봄이면 전라남도 목포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국도 2호선은 봄꽃이 앞다투어 피고, 새봄을 맞이하려는 전국의 관광객들이 국도 2호선으로 몰려든다. 이번에 여행할 곳인 전통한옥 정자 열화정을 품은 강골마을도 국도 2호선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유명 관광지와는 거리가 있어, 고즈넉한 봄맞이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소리 소문 없이 찾아 드는 곳이다. 강골마을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유일한 철로인 경전선 득량역과 예당역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뚜벅이 골수 여행자, 철도청에서 발행하는 내일로라는 열차 프리패스를 이용한 철도여행의 고수들만이 알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비급 여행지. 지금이야 키워드 하나만 알고 있으면,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단번에 검색해 아는 척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 이전 세대에게 강골마을을 다녀왔다면 여행의 고수 중에 고수라고 인정받던 전통한옥마을이다. 

 

16세기 광주 이씨의 씨족마을로 득량만을 바라보고 남사면 언덕 위에 위치한 마을이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득량 평야에서 얻은 식량으로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승리를 얻었다 하여 장군의 거취를 기념한 선소가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선소 인근에는 공룡알 화석이 발견되어 그 신비함을 더하고 있으니 꼭 들러보자.

 강골마을의 초가집영화와 드라마에 수없이 많은 배경 장소이기도 한 열화정은 영화 ‘혈의 누.’ 사극 드라마 '붉은 단심', '옷소매 붉은 끝동', '신입사관 구해령' 등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여행의 시작은 이진래 고택 연못 앞에서 시작한다. 이진래 고택은 국가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어 때에 따라서는 문이 잠겨 있을 때도 있다. 고래등 같은 한옥이 밀집한 여타의 한옥 마을과 달리 강골마을의 한옥은 소탈하며 정감 있다. 어린 시절 시골 외가댁을 찾는 심정이라고 할까. 솟을대문이 이 눈길을 끄는 이진래 고택 앞의 연못은 사각형으로 가운데 태양을 상징하는 섬이 떠 있고 그곳에 삼층 탑신이 있었으나 현재 그 기단만 남아 있다. 

 

솟을대문을 마주 보고 오른쪽으로 담을 따라 들어서면 흙과 돌을 쌓아 만든 토석식 담장에 둘러싸인 마을 우물을 만나게 된다. 소리샘이라고 불리는 우물과 마주한 담장에는 네모난 창이 마련되어 있어 우물가에 모인 마을 아낙들의 입소문을 고택 뜨락에서 들을 수 있게 했다. 이를테면 마을의 인심과 소문을 귀담아들으려는 소통의 장이 되어 주고 있는 장치.

 마을 아낙네들 소통의 장이기도 한 우물 소리샘마을 우물을 둘러보았다면 강골마을 여행의 백미, 열화정으로 발길을 옮긴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걷다 보면 토석담이 둘러 처진 담장 사이로 일섭문이 나타나고 문을 들어서면 한국의 백경으로 선정된 열화정 뜨락에 들어서게 된다. 

 

마을의 뒷동산 비탈면에 기대어 선 열화정은 두 칸의 온돌방과 장작을 때기 위한 아궁이가 있는 간이 부엌, 누마루로 3방향이 탁 트인 정자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의 앞뒤에는 툇마루가 있는데 이를 전후퇴라고 한다. 지붕의 양식은 조선시대 전통적인 팔작지붕으로 남동향을 바라보고 있다. 잎이 무성한 계절이 아니라면 정자를 둘러싼 나무 사이로 남해안을 조망해 볼 수 있다. 

 

누마루의 비를 가리는 방법으로 팔작지붕이 본 건물에 비해 길게 배치되어 있다. 지붕의 하중을 받아 내기 위한 긴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이를 활주라고 한다. 기둥은 그 기능에 따라 평주, 고주로 분류되기도 한다. 누마루 주변의 정자에는 계자난간과 계자다리로 장식되어 있다. 열화정의 뜨락에는 기역 자 형태의 연못이 자리한다. 연못 한쪽에는 자연석을 놓아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연못의 기역 자 형태와 건물의 형태가 상반되어 마치 테트리스를 짜 맞춘 듯하다. 정자 뒤편에는 대숲으로 조성되어 있고, 비탈면에는 오래된 동백나무가 식재되어 있어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뜨락에는 송이채 똑떨어진 붉디붉은 동백 꽃송이가 아련한 정취를 자아낸다. 특히 연못에 떨어진 붉은 동백 꽃송이를 보고 있노라면 왜 이곳이 한국의 백경으로 선정되었는지 공감이 간다. 


녹음이 짙푸른 무렵의 열화정

열화정 누마루에 앉아서도 좋고, 연못가 자연석 위에 앉아도 좋다. 잠시 눈을 감고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 누각의 처마에 매달린 풍경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어 준다. 다시 일섭문을 나와 건물의 왼편에 난 비탈길을 걸어 나오면 일제시대 간척했다는 드넓은 득량평야와 득량만이 보이고, 그 바다 저 넘어 고흥반도의 팔영산이 드리워진 산 그리메가 선경이다.

 득량평야와 득량만 넘어 고흥반도의 팔영산

역에 들어서는 경전선 열차

열화정 뒤쪽 동산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잠시 오르다 내리막으로 들어서면 강골마을의 다른 편쪽으로 나서게 된다. 이따금 동네 개들이 길마중을 나오기도 하는데, 시골에 풀어놓은 개들은 순해서 낯선 이들도 꼬리치며 반긴다. 한적한 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득량역으로 향하면 1960년대 역 앞에 있던 가게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추억의 롤러장, 역전이발관, 쌍화차와 도라지 위스키를 팔 것 같은 역전다방, 간판에는 이순신 장군을 그려 놓고 ‘ 내가 득량역에 온 것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문구를 만나기도 한다. 


1960년의 시대가 멈춘 득량역 앞의 상가들

이곳에서 강골 영농조합에서 전통방식으로 만든 엿을 볼 수 있다. 일행과 함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놀이인 엿치기를 해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 득량역 역사에서 시골역의 고즈넉함을 즐기는 것도 이번 여행의 묘미이다.


[여행작가 정윤배 / ochetuzi@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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