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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꽃길
  • 기사등록 2024-09-21 07: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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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9월도 마지막 주에 이르렀다. 역대 최장의 열대야와 장마철 덥고 끈끈한 습기로 지치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 줄 방법을 찾다,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꽃길을 알아보기로 했다.  

 

▲법정스님이 거처하신 진영각 가는길의 꽃무릇 / 사진=정윤배 작가


[붉디붉은 꽃무릇 융단 드리워진 성북동 길상사]

북한산 자락에서 갈라진 능선이 성북동 주택가로 흘러내리는 곳에 길상사는 자리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절이어서 접근이 편리하고, 지하철 4호선 한성대역에서 성북천 좌우 측으로 고급주택가와 정평있는 맛집과 카페가 즐비한 길을 따라 걷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노약자와 동행한다면 한성대 입구역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길상사 정문 앞에 수월하게 내릴 수 있다.


▲삼각산 길상사 극락전


서울에서 꽃무릇 감상지로 유명해진 길상사 경내에는 뜨거운 여름을 잘 이겨낸 응긋나물, 누린내풀 외에도 사시사철 경내를 지키고 있는 수령 270년의 느티나무와 목백일홍도 찾아보자. 한국의 시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라는 호칭이 붙은 백석의 시집 ‘사슴’ 한 권 품에 안고 경내를 거닐다 마음에 닿는 자리에 앉아 시인과 시인을 사랑한 길상사의 전신인 대원각 권주 김영한, 기명은 진향, 백석이 지어준 애칭 자야, 법정 스님이 지어준 법명 길상화. 별칭만큼이나 시대의 번뇌를 함께 했던 여인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길상사 칠층석조보탑


백석과 김영한은 둘이 몹시 사랑했으나 백석 부모님의 강한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하고 38선이 갈라져 평생 서로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시집 한 권 품지 못했더라도 길상화의 공덕비에 새겨진 그의 시를 천천히 읽어보자.

느린 발걸음으로 공덕비 옆으로 난 산비탈에도 꽃무릇은 녹음 속에서 그 가녀리고 붉디붉은 꽃잎을 화려하게 펼치고 있다. 무리 지어 아름답다면, 꽃송이 하나하나는 제마다 모양이 다르다. 마치 무희가 한껏 춤을 추다 치마폭을 펼치고 꽃송이처럼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길을 따라 오르면 법정 스님이 거처했던 진영각. 오르는 길 우측과 계곡 건너에는 별채가 지어져 있는데 그 길을 오를 때마다 이 나라를 좌지우지했던 고관대작의 술에 취한 웃음소리와 그들의 비위를 맞춰야 했던 기생들의 곡소리가 들린다면 나만의 오산일까.

진영각 뜨락에 들어서면 생전에 앉아 계시던 나무 걸상이 건물 옆에 놓여 있다. 이 땅의 주인 김영한 길상화는 법정 스님의 노년을 모시기 위해 10년을 공 들였다고 한다. 이 땅이 어떤 땅인지 잘 아는 서로는 얼마나 견제를 했으며 그 청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셨을까. 법정 스님의 책을 보면 자신의 임종에 대해 고민했던 내용이 담겨 있다. 어느 토굴에서 짐승에게 공양을 할까 대한해협을 건너다 몸을 던질까 하는 스님의 솔직한 심정은 필히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중생들에게도 숙명과 같은 것. 길상화의 바램에 길상사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오고 가며 땅이 지니고 있는 지기가 눌려지고 있는 것 같다.


▲북악정에서 바라 본 북한산


길상사 주변의 고급주택가에는 대사관들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성북구에서는 이에 착안 매년 세계음식축제도 정기행사로 자리 잡을 만큼 오가는 길의 음식점들은 정갈하고 맛있다고 소문나 있다.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도 꼭 들러보자.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에게는 신기하리만큼 생소한 좁은 비탈길의 골목이 발걸음을 반긴다. 요즘은 맛집 정보를 따로 다루지 않는다.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입맛과 주머니 사정에 맞는 음식점을 골라보자.

길상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남산의 서울타워와 함께 서울 시내 전망대로 손에 꼽는 곳이 북악정이다. 서울 시내와 북한산 향적봉, 문수봉과 사자능선을 한곳에서 조망해 볼 수 있는 곳으로 날이 선선해지면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를 따라 걷기에도 무리 없는 코스. 서울시민이 사랑하는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여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나 때에 따라 다소 혼잡할 수 있다.


▲연천 호로고루성 해바라기


[하늘이 활짝 열린 연천 호로고루성]

호로고루성은 연천군 장남리 임진강변에 있는 성으로 고구려 시대 축성되었다고 한다. 백제의 땅이었던 이 일대를 고구려가 점령하고 전략적 요충지로 성을 쌓았다. 한강이 삼국시대의 격전지였던 탓에 이곳도 백제와 고구려, 신라 삼국이 서로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것은 자명한 일. 현무암으로 지은 부분은 고구려 때, 편마암으로 쌓은 부분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임진강 건너는 민통선 지역으로 눈으로만 감상해야 한다. 성 위에 올라서면 드넓은 하늘이 주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된다. 호로고루성의 역사적인 의미를 따로 공부할 필요 없이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


▲임진강 하늘을 수놓은 솟대


토목기술이 발전하기 이전 강을 건너는 것은 오로지 계절과 강우량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임진강의 유속과 수심이 낮아 예로부터 이 지역은 강을 건너는 아주 중요한 지역이었다. 한때는 이곳 고랑포에 서울 화신백화점의 규모만큼 커다란 상점이 들어설 만큼 번화했다고 한다.


▲임진강도하 요충지 고랑포


지금도 남과 북이 대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전망이 뛰어남에도 관광지로 역할을 하는데 다소 개발이 늦어졌다. 남쪽으로는 감악산 일대 산군과 북으로는 개성에 인접한 송악산이 아스라하다. 성 일대의 넓은 개활지가 해바라기 밭으로 조성되어 해마다 성황을 이루었는데 올해는 지속된 무더위로 해바라기가 제대로 개화하지 못해 축제가 취소되었다. 그 점이 오히려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져 가족 단위 호젓한 여행지로 추천한다. 오가는 길, 임진각 인근 평화누리 공원을 들려 본 경험이 있다면 휴전선 넘어 개성 일대 송악산이 바라보이는 장산전망대와 임진강 물굽이가 크게 도는 화석정과 율곡습지공원을 둘러보자. 율곡습지공원 인근에는 율곡수목원이 있어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을 즐기기에 안성맞춤.


▲호로고루성 위로 감악산이 보인다.

동선을 잡는다면 자유로를 이용하는 운전자에게는 장산전망대 - 화석정 - 율곡습지공원 일대 음식점에서 점심을 한 뒤 율곡수목원을 산책하거나 호로고루성을 향한다. 이곳을 오가는 37번 국도는 주말에도 정체가 드물어 드라이브의 호쾌함을 즐길 수 있다. 호로고루성 주변에는 임진강과 성 주변을 조망해 볼 수 있는 카페에서 차 한잔하는 즐거움도 누리시길 권한다. 카페 고랑포이야기에 가면 사전 조사하지 않아도 포구의 옛 영화를 볼 수 있는 자료사진과 그림이 준비되어 있다.

 

[경제엔=여행작가 정 윤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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