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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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엔=박민지 기자] 자유민주총연맹(사무총장 최명진)은 건국절 논란과 관련해 광복회 입장에 반대하는 긴급기자회견을 지난 21일 광복회관 앞에서 개최했다고 27일 밝혔다.
긴급기자회견을 주최한 자유민주총연맹 최명진 사무총장은 “정치적 중립을 취하고 국민통합에 앞장서야 할 광복회가 국가 최고의 국경일인 광복절을 광복회 단독으로 치른 것은 문제가 있다”며 “자유민주총연맹 408개 단체는 여의도 광복회관 앞에서 1948년 건국을 천명하는 동시에 광복회의 시정변화를 위한 긴급기자회견을 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은 건국에 대한 역사적 고찰, 헌법에 수록된 건국의 의미, 상해임시정부와 초대 헌법에서 언급한 13도 대표 국민대회(한성임시정부) 발표, 김영실 박사(김상옥 독립유공자 손녀, 미국 클레몬튼 대학원)의 성명서 낭독, 자유민주총연맹 소속 408개 단체의 촉구내용으로 진행됐다.
자유민주총연맹은 성명서에서 ‘1948년 8월 15일은 건국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단체들은 해방일을 광복이라 해 마치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 결실로 주장하지만 해방은 연합군에 의해 이뤄졌다.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왔다’거나 ‘하나님의 급작스런 선물’이라는 1945년 독립운동가 함석헌 선생의 표현처럼 광복은 일본의 항복으로 우리 민족에게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주독립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3.1운동의 역사가 있다. 1919년 3.1운동은 1918년 미국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 영향에 의해 억압받던 우리 민족이 인류공영의 자유 정신에 근거해 일으킨 민족 운동이었고, 3.1운동 이전 1890년 후반에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가 활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1910년 조선왕조, 곧 대한제국은 망했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많은 애국지사들이 국내외적으로 독립을 위해 다방면의 활동을 했다. 그러나 1945년 해방이 되고 미 군정이 들어섰을 때 미군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애국활동하던 임시정부 요인들은 미 군정의 자문기구인 민주의원으로 참여해 개별적인 정치활동을 벌였다. 1948년 비로소 국민, 영토, 주권의 국가 요소를 갖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건국됐고, 제헌 건국 헌법의 전문을 보면 ‘위대한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돼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