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정윤배
서울에 눈이 오잖아요, 그럼 그냥 지하철 타고 경복궁역이나 안국역 가서 북촌 길 따라 걸으세요. 관광지도와 자세한 설명이 있거나 북촌길을 잘 아는 가이드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냥 발길 따라 시선 가는 대로 걸으세요. 눈 내린 북촌한옥마을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우리가 자라면서 봤던 어린 시절의 그 풍경이 그대로 있답니다.
대중교통이 편한 지하철역을 기점으로 경복궁역이나 안국역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경복궁의 주차장과 인근의 공공주차장의 주차요금은 걷는 내내 사람을 불안하게 할 정도로 비싼 것이 첫째 이유. 경복궁에 들어가지 않아도 서쪽 뜨락과 광화문 담장 안 풍경만으로도 서울의 제1경이라고 손에 꼽을 만큼 걷기에 아름다운 전경을 보여주고 있다. 눈 오는 날, 고궁의 풍경은 아름답기는 하나 이번 여행은 북촌한옥마을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보기 위한 여행이므로 북촌을 둘러보기 위한 애피타이저로 들려보자는 의미.
광화문을 들어서면 첫째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서울 사대문 안에서 드넓은 개방감을 만끽하게 해준다. 하늘이 탁 트인 풍경, 푸른 하늘이어도 좋고, 구름이 낀 흐린 날씨여도 좋다. 맑은 날이라면 하늘에 집중할 터이고, 흐린 날이라면 경복궁 고궁이 지니고 있는 건축물에 집중할 수 있다.
경복궁 동쪽 편의 성벽을 따라 걸으면 만나게 되는 것이 건춘문. 건춘문을 지나면 국립민속박물관 경내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만나게 된다. 입장은 무료. 마을 어귀에서 볼 수 있는 솟대와 장승, 홍살문과 남근석, 여근석의 석물을 지나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초가집도 있고, 경기도에서 흔했던 형식의 전통 한옥마을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6,70년대 서울 시내의 거리를 재현한 거리를 만나게 된다. 국밥집, 이발소, 다방, 만화방, 양장점 멀리 지방에나 가야 볼 수 있던 추억의 세트장이 발길을 반긴다. 다방에 들어가 발품도 쉴 겸 최백호 노래 가사에 나오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옛이야기를 나눠보자. 도라지 위스키를 판다면 금상첨화지만 아쉽게도 음료는 제공하지 않는다.
북촌마을은 20여 년 전만 해도 관광객의 발길이 드물었다. 지역주민들과 삼청동 맛집을 찾는 몇몇 서울 토박이들이 찾던 곳이 이제는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가 되어 주말, 평일 말할 것도 없이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 되었다. 특히나 외국인 관광객들이 인근의 한복대여점에서 화려한 한복을 저마다 특색있게 갖춰 입고 나와 걷는 모습은 꽃구름이 지나는 것 같다.
삼청동을 오가는 관광객 인파를 벗어나 주택가 산비탈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자연암반을 깎아 만든 석계단을 만나기도 하고,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가파른 콘크리트 계단을 오르기도 한다. 북촌한옥마을의 골목길은 워낙 좁고 복잡해서 글과 지도로 설명하기 아주 복잡하다. 최고로 좋은 것은 북촌한옥 마을을 잘 아는 가이드와 동행하는 것이지만, 프로그램을 찾아 예약해야 하고 가이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비용 이상의 가치가 있는 정말 좋은 체험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길을 걷다 갈림길을 만나면 시선 가는 길로 들어서면 아주 재미있는 골목길이 북촌에는 수두룩하다. 그런 이유로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서울시에서는 한때 북촌한옥마을을 홍보하기 위해 북촌팔경이라는 곳을 지정, 도로에 뷰 포인트를 동판으로 표시했으나, 그곳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워낙 많아 민원이 발생, 북촌팔경이라는 단어 조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한때는 북촌야행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북촌의 밤길을 거니는 단체가 늘자, 현지 주민들의 생활에 지장이 된다고 하여 오후 5시 이후 관광객의 출입을 금지하는 곳이 선정되어 있으니 이점 유의해야 한다.
한때 대한민국의 표준말은 서울 가회동의 중산층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기준으로 삼았다. 표준어의 구사가 가장 정확한 사람으로 탤런트 고 여운계 선생님을 꼽기도 했다. 가회동에서 나고 자라고, 정확한 발음을 구사한 덕에 오래전 티브 대담프로에 고 여운계 선생님의 발음과 표준어와 서울 사투리에 관한 프로그램을 티브이를 통해 본 기억이 있다.
북촌마을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태조 이성계가 도읍지로 한양을 정하고 지방에서 영향력 있는 토호세력 중에 관료로 임명하기 위해 경복궁에 상주 시키고자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북촌이다. 한마디로 관료들의 관사 역할을 했다. 조선팔도에서 모였을 관료들이 온전히 서울말을 사용할리 없었을 터, 정변이 있을 때마다 북촌에 거주하는 관료들의 출신도 바뀌었을 것이다. 북촌마을 가회동에서 사용하는 말이 표준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북촌은 민속촌이나 지자체에서 지정 육성한 한옥마을과 달리 오래전부터 주민들이 살아오던 생활공간이다. 사진과 같이 좁은 길에 소형차가 주차되어 있고, 눈이 쌓여 있는 비탈길을 위험천만하게 운전하는 우체부의 스쿠터가 다니는 주거공간. 어린시절 딱지치기, 구슬치지, 술래잡기 하던 골목길의 모습이 그대로이다. 그러니 제발 북촌을 찾는 타지인들은 현주민들을 존중하고 큰소리로 대화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북촌에서 제일 전망이 좋은 곳에 전망대를 겸한 카페가 있다. 그곳에서 차 한잔하며 눈 아래 펼쳐진 한옥마을의 지붕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나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이채로운 풍경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북촌한옥마을을 가는 길은 수없이 많다. 인근의 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대중교통이 갈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인 연서고개에서 내려 시작하는 것도 방법. 가장 좋은 방법은 지도를 잘 보는 지인과 동행한다면 북촌을 중심으로 화랑가와 맛집, 멋집이 발달되어 있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걸으며 좀 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여행작가 정윤배 / ochetuzi@naver.com]